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2)
"이 글은 당당뉴스(DangDang News)에 공식 기고된 목사님의 소중한 기록입니다."
- 매체사: 당당뉴스 (The DangDang News)
- 발행일: 2010-11-09
- 필자: 김기천 목사 (Rev. Kee Cheon Kim)
📜 목사님 원고 전문 (Manuscript)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2)
업데이트 2010.11.09 14:21
익투스트래블190423
2. 그리스 로마 세계에 포함된 인도
2.1. 낙하마디 문헌들의 뿌리를 찾아서
김기천 목사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문헌들을 보면 대부분 기독교와 연관된 것들이다. 사용하는 용어들이나 형식이 기독교와 유사하기는 한데 내용을 보면 기독교의 가르침과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다음은 『도마복음』4장 1절[장절 구분은 문제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방법이다. 도마복음은 전부 114개의 단락으로 되어 있다. 본 책에서 단락은 “장”으로 단락 안에 세분화된 문장들은 “절”로 표기한다.] 내용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이 난지 칠일 된 갓난아이에게 생명의 장소를 묻기를 지체하지 않을 것이요 그러면 그 사람은 살게 될 것이다. 처음된 자들이 나중될 자가 많을 것이요 그들은 하나가 될 것이니라.
문제는 “전통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다른 이런 사상들이 어디서 왔느냐?”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낙하마디 문헌에 있는 이런 독특한 내용의 기원을 그리스 사상에 귀속시키려고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이 내용은 고대 유대교나 이집트 사상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들이다. 물론 항아리에 들어 있던 문헌들 안에서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관심에 부합되는 글들을 수집해서 읽다가 항아리 안에 넣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글들이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다음과 같은 『도마복음』7장 1절은 자체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이 먹게 될 사자는 복이 있나니 그 사자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자가 먹게 될 사람은 저주가 있나니 그 사자는 사람이 될 것이니라.
이 구절은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여섯 번째 책 안에 들어 있는 플라톤의 『국가론』에 의해서 해석될 수 있다. 내용을 약간 변경시켜 이집트 콥틱어로 번역한 이 글에 의하면 사람 안에는 세 모습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사자 모습을 한 “키메라”(Chimera)이고, 둘째는,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모습의 괴물 “세르베루스”(Cerberus)이고, 셋째는, 인간 모습이다. 이 세 모습은 하나가 되어 점점 커지면서 사람 모양이 되었다. 이 사람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볼 수가 없고 밖에 있는 것만 볼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머리 많은 괴물은 인간의 천한 열정이고, 사자는 용기 있는 열정이고, 인간은 지성을 가리킨다. 결국 위에 언급한 『도마복음』7장 1절에서 사람이 사자를 먹는다는 말은 인간의 지성이 용기의 열정을 지배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이나 이성이 감정이나 열정을 지배하는 이런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사자가 사람을 먹는다는 말은 인간의 감정이나 열정이 깨달음이나 이성을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둘 다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은 깨달음이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감정이나 열정이 지배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설명이 보여주는 것은 『도마복음』과 같이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모든 영지주의 문헌들은 내용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용들을 보면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공통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죄의 문제는 언급이 없고 영적인 지식을 말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自覺)을 강조한다. 세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가 아니라 이런 영적 지식이 결핍된 것이라고 한다. 한 예로 『도마복음』3장 4절과 5절이 이것을 보여준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그러면 너희는 가난 가운데 있는 것이다. 너희가 그 가난이다.
상식적으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야 그의 아들이 된다고 가르친다(참조, 마 11:27, 눅 10:22, 요 10:15). 그런데 『도마복음』과 같은 영지주의 문헌에서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가르친다. 도대체 이런 가르침들이 어디서 온 것인가? 이런 유별난 사상들의 뿌리는 어디란 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 낙하마디 문헌의 전문가인 페이젤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힌두교나 불교 전승이 영지주의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페이젤스 자신이 동양종교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서양에서 가장 권위 있는 불교학자 콘즈(Edward Conze)의 대답을 빌린다. 콘즈는 그렇다고 대답한다[Elaine Pagels, The Gnostic Gospels, (New York: Vintage Books, 1989), xxi.].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이 당시에 인도사람들이 그 먼 이집트까지 왔겠는가?”라며 쉽게 의문을 던진다. 사실 낙하마디 문헌이 만들어질 당시 로마,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유럽의 세계관에는 이미 인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말은 이집트와 인도 사이에는 활발한 무역과 문화 교류가 있었다는 말이다.
2.2.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도와 문화 교류
기원전 6세기에 사이러스 대왕(Cyrus the Great, 기원전 약580-530)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리비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포함하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다. 그의 정치 군사적인 통일로 말미암아 인도문명, 그리스 문명, 이집트 문명 간의 거침없는 교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323)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까지 이르는 알렉산더 제국을 세웠다. 알렉산더 제국의 영토의 크기는 아래 지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와 거의 비슷하다.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의 인더스 강을 건너 펀잡(Punjab) 지방까지 다스렸다. 펀잡 지방에 두 도시를 세우고 거기에 주로 그리스인들로 구성된 다국적 군대들을 정착시켰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떠난 후에도 계속해서 발전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이 무너진 후에 세워진 로마제국(기원전 27- 주후 476)도 인도와의 교류를 유지했다. 아래 그림[PD/1923|A.D. 23.]은 그리스의 역사가이며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3-주후 24년경)가 이해했던 당시 세계였다. 스트라보는 학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당시 알려진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면서 연구한 자료를 토대로 17권에 해당하는 지리책 (Geographica)을 출간하였다. 아래 지도는 당시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이해했던 세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아시아는 인도를 포함하고 있다.
주후 1세기경에 아시아에서는 박트리아(Bactria)를 중심으로 “쿠샨”(Kushan) 제국이 세워지면서 인도 북부와 심지어는 중국 서부까지 통치하였다. 쿠샨 왕조는 동쪽으로는 중국 한나라와 서쪽으로는 페르시아와 심지어는 로마와도 국교를 맺었다. 쿠샨 제국의 남쪽 지방에 속해 있었던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한 불교 사원에서는 로마 황제 “트라얀”(Traianus, 주후 53-117)의 동전이 쿠샨 왕조에서 가장 유명한 왕이었던 “카니쉬카”(Kanishka)의 동전과 함께 발견되었다. 쿠샨 사람들도 로마의 모델을 따라 동전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증거이다. 현재 파키스탄에 속한 펀잡 지방에서도 로마의 동전들이 발견되었다.
쿠샨 사람들은 그리스 문자를 받아들였고 그리스 문화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동전에는 그리스 문자인 희랍어를 새겨 넣었다. 쿠샨 사람들은 원래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었다. 그러나 주후 80-90년경의 통치자 “빔마탁투”(Vima Taktu) 왕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석고나 돌로 만든 불교 조각들이 꽃을 피웠다. 불교 예술에서도 그리스 문화를 모방했다. 간다라(Gandhara) 북서 지역에서 발견된 조각들은 인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부처의 호위한다는 금강수보살(金剛手菩薩, Vajrapani)은 번개를 붙잡고 있는 벌거벗은 헤라클레스 모습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초기 부처조각상은 갠지스 강 동쪽에 있는 조각상들과는 다르게 로마 의상을 입고 있다. 그리스 문화와 불교문화가 결합된 그리스 불교문화가 쿠샨 제국 내에서 번성했던 것이다.
2.3. 그리스 로마 문헌에 기록된 힌두 종교
주후 2세기경 풍자작가인 사모사타의 루키안(Lucian of Samosata, 주후 125-180 이후)은 그의 글 「도망자들」(DRAPETAI)에서 다음과 같이 인도 브라만들에 대한 묘사를 했다.
철학(Philosophy): 나는 처음 도망할 때 그리스로 향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그래서 처음으로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인도 사람들에게 갔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서 나를 따르라고 설득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브라만들은 옥시드라케(Oxydracae)와 네크레이(Nechrei)[인도 북서부 인더스 강 유역에 있는 지역 이름들] 지방 사이에 살고 있는데 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의 법을 따라 살고 있고 그들의 이웃들에게 존경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죽는 방법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제우스(Zeus): 아. 그 벗고 사는 인도 지혜교사들. 나도 그들에 대해 많이들은 적이 있다. 다른 것들보다도 그들은 장작더미를 엄청나게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앉아 불에 타 죽는다....[The Works of Lucian of Samosata, vol. IV, trans. by H. W. Fowler and F. G. Fowler, (Oxford: The Clarendon Press, 1905), 97-98.]
앞에서도 언급한 1 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3-주후 24년경)도 인도 종교인들의 풍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인도 브라만들은 세상의 시작이 있었으며 세상의 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양은 둥글다고 한다. 세상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신이 다스리고 있으며, 신이 세상을 그의 위엄으로 채운다고 한다. 그리고 물이 만물의 원리라고 한다. 영혼의 불멸과 악한 자들의 지옥 형벌에 관해서는 플라톤(Plato)의 교리를 따른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항상 벗고 산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이 그들에게 “옷 벗고 사는 지혜교사들”(gymnosophists)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생활이 엄격하며, 비범한 인내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에게 음식과 음료는 식물 뿌리와 물 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인간의 영혼이 옮겨 다닌다는 윤회(metemyuvcwsi") 사상을 받아들인다. 즉 인간의 영혼들이 짐승의 영혼들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들은 짐승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들은 매일 태양을 향해 계속 서 있다. 태양이 그 빛을 가장 맹렬하게 쏟아 붓는 계절에 그렇게 한다.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것은 품위를 손상시킨다고 배워서, 자신이 나이를 먹거나 병이 들거나 하면, 최후의 순간을 피하는 것이 영광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몸을 산채로 태워버린다. 그리고 단순히 나이 들어 죽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화장용 장작만 축내고 그들을 재로 태워버리는 불을 모독한다고 생각한다.[Charles Rollin, The Ancient History, vol. VI., (NY: David Huntington, 1815), 273.]
위와 같은 루키안이나 스트라보의 기록은 당시 사람들이 이미 인도 사람들의 풍습이나 인도 종교인들의 가르침을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낙하마디 문헌이 만들어지기 약 삼백 년 전에도 로마제국 내에 사람들은 인도 종교를 알고 있었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82-289페이지)
🏛️ 최고 신학자의 심층 분석 및 현대적 해석
김기천 목사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2)" 심층 해설 및 분석
1. 핵심 요약
김기천 목사는 본 글에서 도마복음의 내용이 신약정경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를 탐색하며, 도마복음의 독특한 사상이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기존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도마복음의 난해한 구절들이 플라톤의 국가론을 통해 부분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제시하며, 도마복음에 나타난 영적 지식 강조 및 자각 중심의 가르침이 기독교의 죄 문제 해결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최종적으로 김 목사는 이러한 도마복음의 특징들이 고대 인도 사상과의 연관성을 시사하며, 당대 로마 세계에 인도 문화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었음을 역사적 증거를 통해 뒷받침합니다.
2. 신학적 인사이트
김기천 목사의 글은 단순히 도마복음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초기 기독교와 주변 문화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조명합니다. 그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2.1.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변별: 김 목사는 도마복음을 비롯한 낙하마디 문서들이 영지주의적 특징을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영지주의는 특별한 영적 지식(gnosis)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을 강조하는 종교 철학 사조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와 충돌합니다. 도마복음에서 자기 인식(자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가르치는 부분은, 기독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자녀 됨을 얻는다는 가르침과 대조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주변부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려 했으나, 정통 기독교 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음을 보여줍니다.
2.2. 문화적 혼합주의(Syncretism)의 가능성: 김 목사는 도마복음에 나타나는 독특한 사상들이 그리스 철학뿐 아니라 인도 사상의 영향 또한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이 혼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활동과 로마 제국의 확장을 통해 동서양의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사상들이 혼합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도마복음은 이러한 문화적 혼합주의의 한 예시로 볼 수 있으며, 초기 기독교가 이러한 혼합주의적 경향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2.3. 정경 형성 과정의 복잡성: 김 목사의 분석은 신약정경이 단순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기준과 논쟁을 거쳐 '선별'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도마복음이 신약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정통 기독교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정경 형성 과정은 신앙 공동체의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단 사상을 배격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도마복음에 대한 논의는 정경의 권위와 해석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져줍니다.
2.4. 역사적 맥락의 중요성: 김 목사는 도마복음을 이해하기 위해 당대 로마 세계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알렉산더 제국과 로마 제국의 교역로를 통해 인도 문화가 이미 서방 세계에 유입되었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루키안과 스트라보의 기록은 당대 사람들이 인도 종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때, 도마복음의 독특한 사상이 단순히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김 목사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습니다. 이는 성경을 해석할 때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5. 자기 인식과 하나님 인식: 도마복음이 자기 인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기독교 신학에서 인간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도마복음의 자기 인식 강조는 이러한 인간 이해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주지만, 그 방법론에서 기독교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기독교는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2.6 인도 사상의 영향: 김 목사는 도마복음의 특징들이 고대 인도 사상과의 연관성을 시사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윤회 사상은 당시 힌두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였습니다. 영혼의 불멸과 윤회에 대한 믿음은 플라톤의 철학에도 나타나지만, 인도 사상과의 유사성은 더욱 깊습니다. 도마복음이 이러한 윤회 사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자아를 초월하고 신과 합일되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은 인도 사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2.7 나가르주나 학파의 중관사상: 초기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중관사상은 모든 존재는 공(空)하며, 실체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공 사상은 세상의 모든 현상은 상호 의존적이며,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김 목사가 언급한 "사람이 사자를 먹는다"는 도마복음의 구절은 중관사상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즉, 인간의 지성과 감정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이러한 상호 의존성을 인식하고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2.8 업(Karma) 사상과의 연관성: 업은 행위의 결과를 의미하며, 선한 행위는 긍정적인 결과를, 악한 행위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도마복음에서 "사람이 사자를 먹는다"는 구절은 업 사상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즉, 인간의 지성이 감정을 지배하는 긍정적인 행위는 복을 가져오고, 감정이 지성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행위는 저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9 아뜨만(Atman)과 브라만(Brahman)의 합일: 힌두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아뜨만은 개인의 영혼을 의미하며, 브라만은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힌두교에서는 아뜨만과 브라만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도마복음에서 자기 인식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아뜨만과 브라만의 합일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자기 내면의 신성을 발견하고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와 하나가 되는 것이 구원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3. 결론
김기천 목사의 글은 도마복음을 통해 초기 기독교와 주변 문화 간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그의 분석은 도마복음이 단순한 이단 문서가 아니라, 당대의 다양한 사상적 흐름이 혼합된 결과물임을 시사합니다. 이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초기 기독교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더 나아가, 김 목사의 글은 오늘날 우리가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